휴가 첫날, 고기를 구어먹다가 나온 이야기였는데, "어느새 야설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라는 말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닷새 동안의 휴가 술자리들은 이 이야기를 시발점으로 해서 어떤 '주제'를 가지고 진행되었던 것 같다.
VT 시절부터 널리 공유되었던 야설, 그러나 어느 순간 부터 야설은 우리에게 잊혀진 무언가가 되어버렸다. 아마 많은 이들의 하드 디스크 속에 수십 기가에 달하는 동영상이 있을테고, 혹은 이미지 파일 - 은꼴사라고 불리우는 - 들도 있을 수 있겠다. 몇몇 사람들은 상당 수의 에로게를 보유하고 있을테고.. 그러나 이제 '야설'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은 아마 극히 드물게다. 무리도 아닌게, 어느샌가 야설은 우리 곁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옛날, 그러니까 ADSL의 전국적 보급으로 인터넷 인구가 폭증하고 많은 사람들이 야후 코리아나 라이코스를 검색 엔진으로 쓰던 시절이 있었다. 정보의 공유, 자료의 공유라는 위대한(?) 카피 레프트 정신을 내세운 와레즈들이 명멸하던 그 때, 우리는 검색 엔진에 '야설'을 치면 수많은 웹페이지들을 만날 수 있었다. 수많은 작품들이 쉽게 구해지던 시절이다. 그리고 그 어느 곳 보다도 기억에 남을 수 밖에 없는 그 이름, '소라넷'. (물론 지금도 존속하고 있는 공간이지만, 그 곳은 예전만큼의 대중성을 상실한지 오래다. 한때는 '성인물=소라넷'이라는 공식이 성립되던 적도 있었으니까..) PC통신과 초창기 인터넷을 통해 급격히 외연을 확장했던 야설들은 모니터를 뛰쳐나가 본격 성인 출판 시장이나 모바일 시장에 진출하기도 했었다. '추월색'이나 '인봉거사' 같은 '작가'들은 팬클럽까지 몰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전국민의 인터넷 환경이 모뎀에서 ADSL로, 또 ADSL에서 VDSL로 발전하는 가운데 점차 야설은 우리의 곁을 떠나게 된다. 야사가 야설을 대체하고, 또 야동이 야사를 대체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일본에서 그저께 출시된 AV DVD를 오늘 초고화질로 다운 받을 수 있는, 그야말로 'IT강국'다운 첨단 성인물 문화를 누리고 있다. 이러한 기술문명의 발전 속에, 옛 시절의 추억을 함께했던 야설은 잊혀지고 말았다.
자, 네이버 검색창에 '야설'을 쳐봐라. 일단 성인 인증 창이 뜨니까 인증하고, 검색 결과를 둘러보자. 페이지가 많이 뜨긴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작 우리가 원하는 바로 그 '야설'을 제공하는 페이지를 찾긴 힘들다. 야설은 이제 우리가 알던 그 '야설'들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개념어에 가까운 단어가 되어 쓰이고 있다. ('야설' 같은, '야설'처럼 이라는 수식어를 생각해보자. 재밌는건, '팬픽 야설'이라는 용례가 생겼다는 건데.. 이건 다음에 이야기하고.) 야설이 무언지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정작 이제 야설을 보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야설을 찾기도 힘들다. 패킷 충전만 한다면, 성인물 본연의 목적에 충실한(?) 원초적 자극을 제공하는 야동들을 종류별로 골라서 받을 수 있는 세상에서, 누가 야설을 보겠는가?
그러나 이같은 '야설의 종언'은 단순히 야설의 추억을 떠올리며 아쉬워하는 것에 그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분명 야설은 우리들의 추억을 상기시켜주는 흥미로운 소재고, 또 야동에 비해 창의력(?)과 상상력(?)을 증진시켜준다는, 단순히 감각적/말초적 쾌락 이상의 것을 보여주는 도구라고 '변호'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 싶은 바는 그 것이 아니다. 단순히 IT 기술 발전 속에 야설이 사라지고 야동이 등장했다, 라는 이야기에서 그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야설에서 야동으로의 전환'이라는 형식이, 다른 분야에서 그대로 적용되고 있지 않은가, 하는게 내가 가진 생각이다. 그리고 이 것은 결국 우리 세대에 있어서 '텍스트'라는 것은 더 이상 큰 의미를 가지지 않는 것이 아닐까, 하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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